"처음부터 기대감이나 심어주지 말지, 몇 번이나 사업이 시작될 것처럼 희망고문만 되풀이되다 보니 미칠 지경입니다."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한때 복숭아 향으로 가득했던 농가에는 쓸쓸한 정적만 흐르고 있다. 마을에서 만난 한 주민은 시들어가는 복숭아나무를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TK신공항 착공 시점이 수년째 안개 속을 헤매면서 언제 토지가 수용될지도 모르는 불확실성이 주민들의 삶을 옥죄고 있다.

◆잔혹했던 6년의 타임라인

대구·경북지역 최대 숙원 사업이었던 대구·경북통합신공항(TK신공항)은 치열한 논의 끝에 군위군 소보면과 의성군 비안면을 공동후보지로 최종 확정하며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2023년 4월 국비 지원과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근거를 담은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같은 해 7월에는 군위군이 대구광역시로 공식 편입되면서 신공항 배후도시 조성을 위한 행정적 기틀이 갖춰졌다.

결정적으로 2024년 들어서며 고금리와 부동산경기 침체의 여파가 사업의 발목을 잡았다. 당초 신공항 사업은 K-2 공군기지 부지를 개발한 수익으로 신공항을 지어주는 '기부대양여' 방식으로 추진됐다. 하지만 건설사와 금융권의 참여 저조로 민간 특수목적법인(SPC) 구성이 무산됐다. 그리고 2026년 현재, 신공항 사업은 완전한 정체 국면에 빠졌다.

◆되풀이되는 희망고문…"차라리 사업 철회하자"

그 사이 사업 예정지인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주민들의 삶은 완전히 멈췄섰다. 개발행위와 토지 거래가 묶였다.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지붕이 새는 노후주택를 수리조차 하지 못한 채 버티고 있다. 수 년째 사업이 미뤄지면서 세상을 등진 고령의 어르신들도 나타났지만, 대를 이어 농사를 지으려는 자녀들은 '행정 기준일에 거주하지 않았다'며 이주 단지 대상이나 지원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주민들과의 소통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터전을 내놓기로 결정했던 주민들은 구체적인 이주단지 조성 계획, 임시 주거 대책, 묘목 손실 보상기준 등을 제시받지도 못한 채 절차상의 지장물 조사만 요구받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최유철 의성군수가 지난 5일 비안면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주민 피해와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빠른 시일 내에 보상절차가 가시화될 수 있도록 모든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18일에는 의성군의회가 '대구·경북신공항 차질 없는 조기 착공과 이주·보상 대책 마련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결의안에는 △정부와 대구시, 경북도에 명확한 사업 추진 일정과 구체적인 재원 확보 방안 제시 △실질적이고 납득 가능한 이주·보상대책 마련 △의성 화물터미널과 항공물류단지 연계를 통한 물류 특화 관문공항 조성 등이 담겼다.

◆지방소멸 위기 극복과 미래 100년의 생존전략

이런 진통에도 불구하고, 신공항은 의성군이 놓쳐선 안 되는 선택지다. 그만큼 통합신공항이 가지는 경제적·사회적 기대효과는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의성군은 전국에서 지방소멸 위기를 가장 크게 체감하고 있는 지역 중 하나다. 기존 농업 중심 산업구조만으로는 청년 유입을 끌어내고, 지역경제를 유지하기에 한계가 명확했다. 하지만 신공항이 문을 열면 새로운 인구 유입과 일자리 창출의 동력을 얻을 수 있다.

최유철 의성군수는 신공항 개항에 맞춰 지역의 공간구조를 바꾸는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대구·경북 북부권과 동해안을 잇는 광역철도망과 도로망을 조기에 완성하고, 중앙선 KTX-이음과 연계해 수도권 접근성을 끌어올린다. 또 공항 배후지역에는 항공 물류 및 정비단지뿐만 아니라 공공임대·분양주택을 대폭 늘리고, 의료·돌봄·교육 등 생활 SOC(사회간접자본)가 갖춰진 '스마트 자족도시'를 조성해 외부 인구를 유입한다는 구상이다.

◆답 없는 신공항보다 피해주민 보상이 '먼저'

하지만 신공항 사업의 현주소는 매우 위태롭다. 사업을 막아서는 가장 큰 쟁점은 재원 조달방식의 불안정이다. 기존 대구 K-2 공군기지 부지를 개발한 수익으로 신공항을 지어 기부하는 '기부대양여' 방식은 건설경기 악화로 사실상 민간자본 유치가 불가능해졌다.

신공항 조성을 위한 재원 조달 문제와 사업 추진방식을 두고 대구시와 경북도가 바라보는 핵심 해법의 무게중심도 다르다.

대구시는 '대구·경북 행정통합'을 최우선 과제로 밀어붙이고 있다. 행정통합을 통해 출범할 통합지자체에 강력한 재정 특례를 담은 '행정통합특별법'을 제정해 정부가 신공항을 책임지게 만들자는 전략이다.

반면, 경북도는 대구시와 '공동사업시행자'로 직접 뛰어들거나 경북개발공사 등 공공기관의 지방공사가 참여하는 컨소시엄을 구성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는 행정통합 논의로 시간을 끌기보다는 공동사업자 체제로 신속히 전환해 착공 속도를 올리자는 현장 중심 해법에 가깝다.

박대욱 이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무엇보다 국책사업이라는 명분 아래 평생 살아온 터전을 내어주기로 결단했던 주민들에게 사업 지연의 대가를 전가해서는 안 된다"며 "지자체 간 기싸움이나 정치적 핑퐁게임을 멈추고, 현장 주민들에 대한 선제적 보상과 이주대책 마련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시점"이라고 꼬집었다.

류성욱 기자 1968plus@idaegu.com